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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4 00:42

2021년 10월 14일 00:42분

만년동 조은빌라 502호에서

아까 전에 친구가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이란 이렇다. “예술대학원의 장단점과 예술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왜 당신은 여기에 진학했나요?” 이를 듣고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찔린 느낌이었다.

나는 집 현관문에 포스트 잇으로 “적당히 살 것인가?” 라는 문구를 써붙여두고 매일 아침 그걸 보고 나간다. 그런데 그걸 보고 깊이 다짐을 하는 목표가 있는 가 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싶은 경우도 있다.

이전에 작가들의 작업을 보러 다닐 때, (그 작가들이란 신생 공간에서 전시하는 대게 무료로 전시를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전시하는 사람들이다.) 그 분들의 작업을 보면서 문득, 아니 매번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 작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였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생업과 현실에 치인 생활 방법론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 어쩌면 소시민적 작업 활동이다. 나는 그것을 나쁘다고 볼 순 없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쁘다고 말하고자 한다. 왜냐, 이는 나아갈 목표, 발전, 도달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학부 졸업 심사 때 이와 유사한 질문이 들어왔었다. “미래에도 작업이 이렇게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나요?”. 당시 나는 “글쎄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선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무한히 아이디어가 많다면 그걸 하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닌가요(?)” 뭐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와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접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던 거 같다.

사실 그 질문은 당시에 아주 정확한 비평이었다. 나의 방향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걸어야 할 지는 알았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진 몰랐던 거 같다. 하지만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토리텔링이 하고 싶진 않다. 특히나 자서전적 이야기는 정말 싫다. 하등 도움 안되는 게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창작이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나는 이미 머리가 큰 사람으로써 누군가를 가르치고 설득하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란 정말 위험하고 어려운 직업이다.

다시 돌아와서, 나의 방법론은 무엇이었는가. 타개를 위한 것이 아닌, 타협을 위한 방법, 그것이 고인물이 아니던가. 구조를 전복하진 않지만, 그것이 무용할 만큼 자유로워지는 것. (그런데 이것이 진정 가능한가, 그 또한 시스템이 보장하는 자유가 아닌가) 지금 보니 이것은 소시민적인 타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의 모든 작업과 관심은 그러한 방법론에 입각해 만들어진 물품이었다. 그러나 그 방향은 어디로 가는가? 자기 참조적인 작업은 독립적이라 할 수 있는가? 자기 참조적이란 것은 사실 온전히 작가를 참조하고 있다. 작가가 죽으면 중단되는 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만이 가는 길, 유일한 길,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립된 길이다. 이는 유효한가? 과연?

잡히는 대로 그리고 만들면 자연히 나의 세계관이 담기긴 한다. 하지만 그대로는 결국 고립된 것임이 분명하다. 자명하다. 나의 연결 고리는 어디에 있는가? 난, 내 작업은, 어디로 가야 하는 가. 나의 가치관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나의 세계관은 어디로 가야 도달할 수 있는가. ‘어떻게’ 라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는 물리적인 작업 방법,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말한다. 태도란 어찌 되어도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야 할 방향과 그것을 구체화하는 수단이다.

나의 방향은 어디인가. 혹 이것은 너무 과한 자기 검열일까. 모르겠다. 이런 모른다는 서술은 무의미하기에 사용해선 안된다. 근데 어쩌면 자기 검열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이젠 알지 못한다. 마치 예전엔 알았던 것 만 같은 착각 속의 발언일지도 모른다.

몸이 으실으실하게 추운것이 난방을 틀어야 겠다. 코로나 백신맞고 2일차인데 아이스크림을 먹었더니 몸이 차다. 해롱해롱한 상태로 글을 마친다.